국민 청원의 빛과 그림자[시사 토론 기사]

[사설] 공론장 부활부터 소수자 혐오까지 … 청와대 국민청원의 명과 어둠이 유진 한겨레 20190503 더 친절한 기자들 자유한국당 해산 청원 계기로 되돌아본 청와대 국민청원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 청와대 홈페이지 폐쇄 움직임

자유한국당 해산 요구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사상 최대 참여자 수를 기록하면서 청와대의 국민청원제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청와대에 특정 정당을 해산해 달라는 요구가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삼권분립 원칙 훼손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2일 오후 2시 현재 자유한국당 해산 촉구 청원은 168만명 이상이 동의한 상태이나,

전문가들은 논란 민원이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에 대해 국민이 청와대에 실질적인 정당 해산을 요구하기보다는 분노의 민심을 보여주는 창구로 국민 청원을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국회의원 선거가 1년이나 남아 ‘동물 국회’를 부활시킨 자유한국당을 심판할 길이 먼 상황에서 차선의 소통 창구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토론은 사라지고 숫자만 남아버린 국민청원 게시판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자유한국당 해산 촉구 청원을 계기로 더 친절한 기자들이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의 이름과 암에 대해 살펴봤다.

잊혀진 권리 청원권 부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2017년 8월 19일 문재인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국정현안 관련 내용이면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민원을 올릴 수 있다.

게시 후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으면 정부와 청와대 관계자가 답한다.

반응은 뜨거웠다.

개설 한 달 만에 1만 4천 건의 민원이 접수됐고, 500일에는 청원문이 47만여 건에 달했다.

하루 1000건꼴이다.

2일 현재까지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정부의 답변을 받은 청원은 총 92건, 자유한국당 해산 촉구 청원 등 6건이 기준에 부합하며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게시판 개설 시점부터 지난해 4월 13일까지 게재된 국민청원 16만 건을 전수 분석한 자료를 보면 정치개혁(18%), 인권남녀평등(10%), 안전환경(7.7%), 육아교육(7.4%) 순으로 많았다.

청와대의 국민청원은 실제로 법제도 개선으로 이어졌다.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한 윤창호법, 불법 촬영물 유포 처벌을 강화한 성폭력처벌특례법을 비롯해 8년 만의 낙태 실태조사 재개, 디지털 성범죄 수사 본격화 등이 그런 사례다.

이런 의미에서 전문가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잊혀진 권리인 ‘민원권’을 부활시켰다고 평가했다.

참여연대 이재근 권력감시국장은 10년 전만 해도 조례 개정을 하려면 나가서 사람 이름, 주소 등을 받아야 했다.

국회나 정부는 청원권을 보장한다는 말뿐 실제로 보장하는 것은 거의 없었다며 지금은 SNS에 로그인하면 누구나 국민청원에 참여할 수 있다.

국민이 자신의 의사를 보다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 셈이라고 설명했다.

국민대 김성배(법학과) 교수도 그동안 국가기관들은 민원에 대해 꼭 답변할 필요도, 원하는 대로 할 필요도 없었다.

이견을 검토했다는 간단한 통보만 이뤄졌기 때문에 아무도 청원을 하지 않았고 청원권이 유명무실해졌다”며 “이 잊혀진 권리가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부활했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동의를 얻으면 여론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청와대 게시판이 공론의 장이 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재근 국장은 시민들이 의견을 표현할 때 과거에는 글을 올리거나 다음 아고라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국민청원에 집중하고 있어 사람들의 의견이 숫자로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배 교수는 “국민청원에 글이 올라오면 국민이 다시 한번 관심을 갖게 된다.

버닝썬 사건도 국민청원을 통해 알려지면서 수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측면이 있다며 나쁘다고 보는 쪽에서는 여론 형성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일종의 여론 형성 과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중앙대 이병훈(사회학과) 교수는 “대통령이 직접 국민과 소통하는 창구이고, 국민이 의견을 내면 사안마다 폭발적인 관심을 받기 때문에 행정민원이나 정책민원을 넘어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장이 됐다”면서도 “다만 그 여론이 청와대 게시판에 모아지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____2. 혐오표현과 엄벌주의 의 강화통로의 역할도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는 청와대의 국민청원은 억지 주장과 장난성 글도 다수 눈에 띈다.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멕시코전에서 장 선수가 수비 실수를 하자 장 선수를 배구 선수로 바꿔 달라는 내용의 청원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청와대의 국민청원이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당초 취지와 달리 난민이나 성적 소수자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감을 표현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되고 있는 점은 문제다.

실제로 지난해 내전을 피해 제주도로 온 500여명의 예멘인들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제주도 불법 난민신청 문제에 따른 난민법, 무사증 입국, 난민신청 허가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와 71만명의 동의를 받았다.

또 성소수자의 인권과 성적 다양성을 알리는 이벤트 퀴어 페스티벌 광장 개최에 반대하는 청원이 제기돼 22만 명의 동의를 받았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석을 엄벌주의 강화를 통해 해소하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로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정부의 답변을 얻은 청원 92건 중 소년법 폐지나 더 강력한 처벌 등을 요구하는 청원이 26건(28.3%)이나 된다.

4건 중 1건꼴이다.

20만 명 이상의 동의라는 숫자에만 초점이 맞춰질 뿐 그 과정에서 소수자는 소외되고 엄벌주의 강화 같은 목소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세대 김현미 교수(문화인류학과)는 청와대 청원은 숫자만 의미가 있다고 답하는 방식으로 나오고 있다.

왜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내부 토론이 중요한데 그런 과정은 없다며 현재 국민청원에는 이런 토론 공간이 없고 동의나 비동의만으로 의사를 표시할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김 교수는 그 결과 국민청원이 대의민주주의의 실패나 무능을 감시하고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선도적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사회적 약자 문제는 사실상 무시되거나 사회적 문제로 만들어지지 않는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 3.1인이 최대 4번 동의할 수 있는 구조는?

일각에서는 한 사람이 최대 네 번까지 청와대의 국민청원에 동의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개인정보를 필요로 하는 실명 인증은 하지 않고 소셜 로그인을 통해 민원에 동의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소셜 로그인에 활용할 수 있는 포털과 SNS 계정은 네이버, 카카오, 페이스북, 트위터 4개이다.

한 계정에 한 번 동의가 가능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4개 계정을 모두 활용하면 최대 4번의 동의가 가능하다.

이 때문에 자유한국당 지지자를 중심으로 168만 명의 자유한국당 해산 청구 참여를 숫자대로 봐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혜순 청와대 디지털커뮤니케이션센터장은 이에 대해 “이용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소셜 로그인을 여러 개 제공하는 것은 대다수 인터넷 서비스의 기본”이라며 “(청와대 국민청원이 모델로 삼은) 백악관 ‘위더피플’의 경우 e메일 인증을 통해 민원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이지만 위더피플도 여러 개의 e메일 계정으로 여러 번 참여할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권한 밖에 민원 많다●국회 본연의 기능 찾아야

3권 분립에 따라 대통령이나 행정부의 권한 밖에 있는 입법권이나 사법권 등을 행사해 달라는 청원도 많다.

청와대의 답변에 한계가 있는 배경이다.

청와대는 이른바 ‘곰탕집 성추행 사건’의 아내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올린 청원문에 대한 답변에서 “2심 재판이 진행되는 사건에 대해 청와대가 언급하는 것은 삼권분립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밝혔다.

또 국회의원 임금을 최저임금으로 책정해 달라는 청원에 대해서는 국회의원 급여와 수당은 정부가 관여할 수 없는 입법부의 권한이라고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들은 결국 국회가 제 기능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회가 갈등 조정 기능을 상실하자 국민이 청와대 청원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재근 국장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입법하는 기관은 국회다.

입법 등과 관련해 국회가 제도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청원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준석 동국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현재는 모든 사안이 청와대에 집중되다 보니 청와대가 ‘대답할 수 없다’는 사안이 늘고 있다”며 “국회 청원이 쉬워져야 하고 국회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와대의 국민청원에는 일부 한계가 있지만 전문가들은 제도 보완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해 11월 내놓은 현안분석 보고서 ‘미국 위더피플 사례로 본 청와대 국민청원 개선안’에서 미국의 국민청원제도인 ‘위더피플’처럼 삼권분립 등에 어긋나는 요구를 담은 청원은 답변을 거부할 수 있거나 청원문을 공개하기 전 e메일로 150명의 참여자를 모집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92371.html